작성일 : 09-01-12 15:51
[한겨레21] “야성을 되찾았다” [2009.01.09 제743호]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199  
6박7일 점거의 재구성…
2박3일 2인 교대조 이어 12월26일 출입문 걸어잠궈, 몸은 힘들어도 웃음소리 끊이지 않아

12월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원내 전략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결국 본회의장 점거밖에 없습니다. 본회의장에서는 지금 외부에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이중삼중으로 시건장치를 강화한다고 합니다.” “그럼, 제가 먼저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종걸 의원이었다. “저도 함께하지요.” 이춘석 의원이 뒤이었다. 민주당의 본회의장 ‘점거투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이종걸·이춘석 두 의원은 ‘산타클로스가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무사히 본회의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두 의원은 불도 켜지지 않은 본회의장에서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며 밤을 새웠다. 난방이 꺼진 본회의장은 한데처럼 추웠다. 크리스마스인 12월25일 오전 9시, 교대조인 이광재·김재균 두 의원이 들어왔다. 오후 4시엔 이광재 의원과 신학용 의원이 임무를 맞교대했다.

» 국회 봉쇄 상황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속기사 출입문이 유일한 통로

12월26일 밤 12시. 원내 전략회의가 다시 열렸다. 정세균 대표도 참여하고 있었다. 국회 본회의장 점거의 D데이-H아워는 12월26일 오전 8시40분으로 정해졌다. 정세균 대표도 본회의장 점거가 시작된 24일부터 국회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26일 새벽 1시, 신학용 의원과 김재균 의원에게 “26일 오전 8시40분에 들어갑니다. 본회의장 문을 열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연락이 갔다. 두 사람은 “이제 됐구나” 하고 손을 맞잡았다. 비몽사몽 사이에 26일 날이 샜다. 오전 7시30분께였다. 본회의장 전체에 불이 밝았다. “앗, 들켰구나!” 때마침 두 의원의 눈에 기표소가 들어왔다. “쩌그로 숨읍시다.” 김재균 의원의 말에 두 사람은 좁은 기표소에 몸을 숨겼다. 불은 켠 이들은 본회의장 방송시설을 점검 나온 국회 사무처 소속 방송팀이었다. 이들은 의원들을 보지 못했다. 1시간 뒤 불은 다시 꺼졌다.

같은 시각, 민주당 의원들에게는 “9시에 예정된 의원총회를 30분 앞당겨 8시30분에 연다”는 연락이 일제히 갔다. 본회의장 점거 계획은 알리지 않았다. 54명의 국회의원들이 모였다. 의원들 앞에 선 원혜영 원내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지금부터 본회의장 점거에 들어갑니다”라고 말했다. 웅성거림도 잠시, 의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이윤성 부의장실(302호)을 통해 본회의장으로 몰려갔다. 보좌진의 도움을 받은 54명 의원들의 점거작전은 신속했다. 이들은 본회의장 출입문을 미리 가지고 들어간 자전거 체인과 쇠줄로 묶었다. 문 손잡이의 열쇠구멍은 액체 본드를 넣어 밀봉했다. 본회의장 정면의 출입문 3곳과 의장 출입문, 부의장 출입문도 모두 막았다. 남은 곳은 비상구로 쓸 속기사 출입문 한 곳. 속기사 출입문은 복도가 어른 한 명이 겨우 오갈 수 있을 정도로 좁다. 진압(?)에 대비해 많은 인력이 한꺼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선택한 비상통로였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국회 사무처 요원들이 이 문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복도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주변 사무실에서 끌어온 의자와 책상을 활용했다. 본회의장 중앙 단상에는 ‘국민억압 위기심화 MB악법 날치기 결사반대’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붙였다.

우윤근 의원은 “12월24일 이후의 상황은 정말 하늘이 민주당을 도왔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의원들을 본회의장으로 입장시킨 원혜영 원내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원 대표는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전쟁은 ‘이명박의, 이명박에 의한, 이명박을 위한’ 전쟁”이라며 “우리는 비록 소수에 불과한 야당이지만, 국민과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정당의 길을 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인간사슬 만들 도구를 나누다

같은 시각 한나라당에도 민주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점거 소식이 전해졌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회의를 마치자마자 원내대표단과 본회의장을 찾았다. 그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터져나왔다. 홍 원내대표는 “도둑들이나 하는 짓이다. (직권상정) 명분만 높여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 있던 주호영 한나라당 의원과 민주당 당직자들 사이에 말싸움이 시작됐다. 홍 원내대표가 “보좌관들은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고 꾸짖자, 최재성 민주당 대변인이 나서며 “협박하는 거냐”고 말을 받았다. 분위기는 일순간에 차갑게 식었다.

밖과 달리 본회의장 안은 후끈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매시간 의원총회와 결의대회를 열며 전의를 다졌다. 이종걸 의원은 “매일매일이 워크숍 같았다”며 “그간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한 분들이나, 타협적인 태도를 취한 분들도 결국 하나의 전선으로 뜻을 모으면서 연대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26일과 27일 본회의장에는 모두 62명의 의원들이 모였다.

27일 저녁, 의원들에게 인간사슬을 만들 도구들이 주어졌다. 등산용 로프와 카라비너(철제 연결고리), 그리고 로프와 몸을 연결해주는 안전벨트였다. 진압이 시작되면 곧바로 옆의 의원들과 카라비너로 몸을 묶도록 되어 있었다. 옆의 의원들과 시험 삼아 몸을 묶어보며 “끝까지 버팁시다”라고 손을 맞잡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신학용 의원은 “본회의장 점거를 통해 우리 스스로 야성을 찾았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그간은 우리도 대안 야당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대안도 제시하고, (예산안 통과를 위한) 협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청와대와 여당만 오만하게 만들었다”며 “대안 마련과 협력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9일 밤, 본회의장 안으로 A4 용지들이 들어왔다. ‘각자의 결의를 써달라’는 주문과 함께. 건교부 장관 출신인 이용섭 의원은 “누가 나를 투사로 만들고 있는가?”라고 적었다. 고등학교 시절 광주 도청 사수조였던 송영길 의원은 “80년 5월 광주 도청을 사수하는 심정으로”라고 적었다. 여성계 출신의 김상희 의원은 “민주당이 국민 사랑 속에 다시 태어나는 내일이 되길”이라고 썼다.

“본회의장 앞에서 새해 인사합시다”

30일 저녁 8시, 국회 귀빈식당.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 그리고 권선택 자유선진당 원내대표 등 협상단이 다시 만났다. 이들의 굳은 얼굴은 40분 뒤의 결렬 선언을 예고하고 있었다. 8시40분, 회의장을 나온 대표단은 “결렬됐다”는 짧은 말로 회의 결과를 전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회의 결과를 전해듣고 곧바로 질서유지권을 발동했다. 의원과 취재진을 제외한 보좌관과 외부인들의 본청 출입이 모두 봉쇄됐다. 본회의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보좌관들에게는 옷 갈아입으러 집에 가는 것도 불가능해지는 순간이었다. 본회의장 안팎은 긴장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으로 모두 모였다. 강기정 의원은 “몸이 불편한 박은수 의원과 국회에 대한 책임이 있는 문희상 부의장 등 두 분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본회의장으로 모였다”며 “우리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원들은 풀었던 로프와 안전벨트를 다시 맸다. 다행히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긴장된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해 바뀜도 이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2008년의 마지막 날인 12월31일 본회의장에는 40명의 의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본회의장 앞에서 새해 인사합시다”는 제안이 나왔다. 밤 11시55분,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 민주당 의원단 30여 명과 100여 명의 당직자, 보좌관들이 모였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드디어 2009년. 민주당 의원들과 보좌관들은 함께 함성을 질렀다. 민주당은 그렇게 ‘거친’ 2009년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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