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11-03 14:53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241  
 

“의원님, 4시에 긴급 의원총회가 잡혔습니다.”


미디어법 등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오는 날이었다. 지역에서 행사만 참석했다가 곧바로 다시 KTX에 몸을 실었다. 모니터를 통해 헌재 판결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문법의 경우 재판관 6명의 기각과 3명의 무효의견으로 기각, 방송법은7:2로 역시 기각이었다.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 및 금융지주회사법의 경우 전원 일치된 의견으로 ‘기각’을 결정했다.


 96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 반복


상세한 내용은 결국 의원총회 현장에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결과는 분명했다. 국민의 의사가 다시 한 번 묵살된 것이었다. 모욕감과 허탈감이 뒤범벅되자 쓴웃음이 나왔다.


‘역사는 이렇게 반복되는가….’ 96년 신한국당이 새벽에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후 야당이 위헌판결을 요청했을 때 헌재가 내린 결정과 오버랩 됐다.


의원총회 분위기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재보궐선거에서 보여준 국민의 마음을 기쁘게, 그러나 엄중하게 받아들인 지 채 하루도 지나기도 전에 발표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민주당 의원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커닝을 한 것은 문제지만 성적은 유효하다’는 판결에 취재진들도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보좌진과 의사국장의 보고를 받고 현장에서 헌재의 판결 요약분을 급히 검토했다. 이럴 수가…. 예상은 했지만 96년 노동법 판결문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눈을 의심해야 했다. 연일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들고 일어나 시위와 성명이 이어졌던 분노의 과거를 재현하려는 것인가. ‘정의는 야당에 있지만 권력은 여당에 있다’는 헌재의 판결은 사법부가 스스로 정의의 편이 아니라고 선언했던 비극이었다.


그러나 비극이 반복되면 그것은 웃음꺼리가 된다. 대표적 보수학자인 이상돈 교수조차 “국회 내의 의사결정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권한쟁의 대상이라고 하면서 헌재에 위력적인 ‘폭탄’이 있음을 자랑해 왔다가 막상 던지려고 보니 그 폭발력이 너무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헌재 스스로 ‘자폭’한 셈”이라고 야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희망은 남아있었다. 아이러니하지만 96년 노동법 판결과 똑같은 논리이기 때문이다. 당시 여당과 야당은 내용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헌재의 판결을 받아들여 노동법을 개정하는데 합의를 이룬 바 있었다.


다급하게 발언 신청을 하고 단상에 올랐다. 헌재 판결을 비판만 하다 그 판결이 곧, 미디어법의 유효를 인정하는 것처럼 포장되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존경하는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결론적으로 보면 다수의 재판관이 시정 여부는 피청구인에게 맡기거나 사후조치는 국회가 해결할 영역이라는 등의 이유를 내놓고 있습니다. 즉,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온 것입니다. 국회에서 이를 재논의해 미디어법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할 것을 건의합니다.”


 미디어법 개정 논의 진행해야


그 날 저녁 ‘무효 언론악법 폐지 투쟁위원회’가 꾸려졌고 여기에 위원으로 참여하라는 당명이 떨어졌다.


‘위법하되 유효한 법률’이라는 괴물을 퇴치하기 위해 율사 출신 의원들이 포진됐다.


싸움은 다시 시작됐다. ‘위법하되 유효한 법률’이라는 ‘좀비’를 퇴치해야 하는 것이다. 좀비의 존재를 한나라당은 인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맨 정신을 가진 국민과 야당은 절대 용인할 수 없다. 이제 정기국회는 겨우 국감을 끝내고 반환점도 돌지 않은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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