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3-11 13:13
거리에 나가 길을 묻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833  
 

거리에 나가 길을 묻다


이 춘 석


# 1

그것은 차라리 충격이라 할만 했다. 할머니와 손자가 즐겁게 잔디밭에 앉아서 사이좋게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마치 가족단위 소풍처럼 보였다. 자유발언 대신 노래를 하는 시민도, 중학생 촛불소녀도 모두 즐겁고 당당했다. 손에서 손으로 초를 건네자 광장이 금세 촛불로 환해졌다.


한 야당의 인사가 올라가서 자유발언을 하겠다고 하자 사회자가 물었다. “안 된다고 했는데도 하시겠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직접 결정해 주세요. 한 번 들어볼까요?” “아니요.” 결국 그 인사는 단상에 올라가보지도 못했다. 단상은 철저히 개별화된 시민들의 장이었다. 의원, 정당, 조직, 운동단체의 권위는 인정되지 않았다.


# 2

필자가 의원으로서 촛불시위대에 합류했던 두 번째 날, 강기정 김상희 김재윤 안민석 최재성 의원과 함께 한 손에는 촛불을, 한 손에는 ‘폭력반대 국민보호’라는 피켓을 들었다.


시위 대열이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몰려가자 경찰버스와 전경이 앞으로 가로막아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우리 의원들은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열의 맨 앞에 섰다. 의원들의 권위가 시민들에게는 별로 먹히지 않았지만 경찰들에게는 효험이 있었던 탓이다.


국회의원이 된지 1주일 남짓, 필자는 지금 거리에 있다. 30일 0시, 임기가 시작되는 순간을 국회 앞 천막에서 맞은 것이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앉아 등원과 장외투쟁의 기로에서 밤을 새웠다.


6월 3일 오후 2시에 열렸던 첫 의원총회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3시간이 넘는 토론 속에서 당은 개원문제를 지도부에 일임하고 행동을 통일하기로 결정했다. 8대2 비율로 다수 의원이 현 상태에서 개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6월 5일, 통합민주당 의원들은 국회가 아닌 현충원에 모였다. 등원을 거부한 의원들 역시 모두 무거운 마음이었다.

일제히 보수언론들은 “일 안 하는 국회”로 매도하기 시작할 것이다. 마치 야당에게 ‘대화’와 ‘타협’의 의지가 부족해서 국회가 파행으로 간 것처럼 말이다.


80% 이상의 국민이 한 달 넘게 같은 말을 하는데도 미봉책만 일삼는 정부다. 고작 80명의 국회의원을 무시하는 것은 너무나 간단한 일이 아니겠는가. 한나라당은 정상적인 국회 개원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인 쇠고기 재협상 촉구결의안 채택과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을 거부했다. 국민의 한결같은 요구와 이를 대변하고자 하는 야당을 무시하는 태도에 변화가 없는 한 국회의 문을 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치는 흔히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등원하라고 등을 떠미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건강주권 앞에 차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국회 속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될 일이 왜 국민과의 직접 대화 속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인지. 국민들이 “나를 잡아가라”고 하는 비상시국 속에서 국민의 대표들이 있어야 할 곳은 진정 어디인지. 그렇게 민생현안을 처리하고 싶다면 가장 큰 현안인 이 광우병 쇠고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통합민주당은 깃발을 내리고 촛불을 들어라.’

당이 거리로 나선다는 기사에 찬성과 반대의 무수한 댓글이 달렸다. 그 밑에는 다음과 같은 글도 적혀 있었다.
“정치 실종? 가장 큰 정치는 현재 거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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